Koryo-saram: The Independence Acti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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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 Chang-ho, Yoo Kwang-soon, and Ahn Jung-geun..
Do you know who these are? That's right. They are the independence activists of the Republic of Korea.
How about Lee Dong Hwi, Choi Jae Hyun, and Kim Kyung-cheon?

Unlike the Korean independence activists, or foreign independence activists that were recently started to be promoted, the Koryo independence movement still has very little presence. However, they are proud independence activists who fought for independence despite the pain of forced migration. I hope you remember what they did.

The history of Koryo's independence movement was accompanied by hardships and trials as great as those of Joseon. Despite the turmoil caused by World War I and the Russian Revolution, they launched an independence movement in Maritime Province, and in 1919 in response to the March 1st Movement, they staged a long live movement centered on Vladivostok. In the 1920s, a lot of Koryo people's blood flowed in Maritime Province, which was called the home of armed struggles outside the country. After the long-lasting movement, Koreans in Primorsky formed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and established an interim government, but the 'Sinhan Village Incident', more than hundreds of Koreans were killed under Japanese oppression. after that, followed by the 'Massacre of Svobodny'.

However, they did not give up. Even in a worse environment than before, they continued their independence movement without forgetting his wish for independence. Thanks to these efforts, they were able to allocate autonomous areas for Koryo people to Maritime Province from 1927 to 1937, which was a very meaningful event for the Korean people, who had lost their countr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owever, their ordeal did not end like this. The Soviet government not only grew in the number of people, but also felt burdened by the Koryo people who constantly demanded autonomy. In addition, Koryo's continued anti-Japanese movement and support activities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could stimulate to Japan, so Stalin started the migration work after approving the Koryo's forced migration order immediately. About a week ago, the Korean community, which was notified of the migration, had to respond and be taken to Central Asia lethargicly.
Their lives changed in poor conditions, and Koryo community leaders and independence activists were also imprisoned for political reasons in the process and even sentenced to death. In the process, Koryo independence activists representing Primorsky were killed in the Great Purge on charges of being "Japanese spies,"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Autonomous Region, which was promoted by Koryo's at that time, was eventually canceled.

However, they contributed to Korea's independence through constant armed struggle and diplomatic activities until the liberation of Korea. Many unnamed Koryo independence activists have campaigned against Japan in spite of the threat of its environment and survival.
Lee Sang-sol, a special envoy to The Hague, Lee Yong-ho, who led the armed struggle against Japan in Maritime Province, Hong Beom-do, in Battle of Bongo-dong, Choi Joo-hyung, who supported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national education. In addition, many independence activists, including Kim Kyung-cheon, Kim Dan-ya, and Park Jin-soon, was active in Maritime Province and Manchuria.
It is not a comparison between Korean independence activists and Koryo independence activists. However, during the period of the conflict with Japan, Koryo people were independence activists who sacrificed for our independence without giving up even in situations where there was no country and the foundation of life was steadily threatened, and we should remember them.

Currently, there is a movement to restore and remember them, mainly the descendants of Koryo people and the Central Asian region, but it falls short for civic groups to complete it. It is not easy to find out about Koryo independence activists in Korea. Even the descendants of them had lost their memories of their ancestors, and some of them live without even knowing the fact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their ancestors.
These actions should be taken by the government to discover and inform independence activists, establish history correctly, and allow people to know and remember independence heroes. Also, the people must remember them not to forget them and not to repeat the same history. We have to try not to forget.
The history of the Koryo people's independence movement is disappearing without our knowledge. Don't we have to remember the sacrifices of many people who have devoted themselves to our country?
We need to investigate data on the Koryo people's independence movement and find a way to preserv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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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해주세요.

안창호, 유관순, 안중근..
이들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맞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동휘, 최재형, 김경천은 누구인지 아십니까?

대일항쟁기, 우리 조상들은 조선 안팎으로 수많은 독립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조선의 독립 운동가, 그리고 최근 시작된 외국인 독립 운동가 알리기와 달리 여전히 고려인의 독립운동은 그 존재감이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강제 이주된 아픔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위해 싸운 자랑스러운 독립 운동가들입니다. 이 분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주세요.
고려인의 독립운동 역사는 조선의 것만큼이나 큰 고난과 시련이 함께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이들은 연해주에서 독립 운동을 벌였으며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1919년에는 3.1 운동에 호응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만세 운동을 벌였습니다. 1920년대 국외 무장투쟁의 본거지로 불렸던 연해주에는 수많은 고려인들의 피가 흘렀습니다. 만세 운동 이후 연해주 한인들은 대한 국민 의회를 결성, 임시 정부를 수립했지만 일제의 탄압 아래 수백 명이 넘는 한인들이 사망한 ‘신한촌 사건(연해주 4월 참변)’이 일어났고, 이후에는 자유시 참변마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전보다 더 나빠진 환경 속에서도 독립의 염원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독립 운동을 이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27년부터 1937년까지는 아예 고려인들 위한 자치 지역이 연해주 내에 할당되는 결과를 얻어냈는데요, 이것은 대일항쟁기 나라가 없어진 민족 고려인들에게는 매우 의미가 깊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시련은 이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소련 정부는 점점 숫자도 늘어날 뿐더러 지속적으로 자치권을 요구하는 고려인에게 부담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지속적인 항일 운동과 독립 운동 지원 활동으로 고려인은 일본에게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자극이 되었기 때문에, 스탈린은 고려인 강제 이주령을 승인 후 즉각적으로 이주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떠나기 약 일주일 전 이주를 통보받은 한인사회는 대응하기도 전해 무기력하게 중앙아시아로 끌려가야만 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한인들은 생을 달리하였고, 한인 공동체 지도자 및 독립운동가들 역시 이과정에서 정치적 이유로 투옥, 심지어는 사형까지 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연해주를 대표하는 한인 독립 운동가들이 어처구니없게도 '일제의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대숙청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당시에 한인들이 추진하고 있던 한인 자치 지구의 설립도 결국에는 백지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광복까지 끊임없이 무장투쟁과 외교활동으로 우리 독립에 이바지했습니다. 이름없는 수많은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은 환경과 생존의 위협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항일 운동을 해왔습니다.
헤이그 특사 이상설 열사, 연해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섰던 이영호 열사,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 장군, 그 외에도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최재형. 그 외에도 김경천, 김단야, 박진순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연해주와 만주 땅에서 스러져갔습니다.
고려인 독립운동가들과 조선 독립운동가를 비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시대 고려인들은 대일항쟁기, 나라도 없고 생활터전을 꾸준히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 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이고, 우리는 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 이들을 복권하고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고려인 후손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지만 시민단체가 오롯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려인, 더욱이 독립운동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쉽지않습니다. 심지어 고려인 후손들까지도 조상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일부는 선조들의 독립운동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정부가 나서서 독립 운동가를 발굴해 알리며 역사를 바로 세워 사람들이 독립 영웅을 알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또한, 국민들은 이들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되새기며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해야합니다. 잊히지 않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고려인의 독립운동역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힘없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많은 분들의 희생을 기억해야하지 않을까요?
고려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료를 조사해서 이를 보존할 방법을 강구해야합니다.

출처자료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34: 러시아편 1,2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8/16/YNP3KT5R2RABVK4NYSV37UQQC4/